충목왕(忠穆王) 元年 甲申(一三四四)生 서운관부정(書雲觀副正)으로 전공판서(典工判書)에 오르셨다. 조선(朝鮮)이 개국(開國)된 후 태종(太宗)이 여러 차례 벼슬로 불러 이조판서(吏曹判書)와 세자사부(世子師傅), 외직(外職) 경상백(慶尙伯)으로 불렀으나 끝내 나아가지 않으셨다. 고려가 망함을 한탄하여 마을 뒤 높은 산에 올라가 송경(松京)을 바라보며 술을 들고 시(詩)「망송경가(望松京歌)」를 읊어 마음을 스스로 위로하시고 백이(伯夷) 숙제(叔齊)와 전횡(田橫:戰國 때 齊나라 사람으로 나라가 망한 후에도 劉邦의 신하가 된 것을 부끄럽게 여겨 자결하였다.)의 고사(故事)를 노래하였는데 그 시와 전설(傳說)이 전해오며 자세한 사적은 『순창군지(淳昌郡誌)』에 실려 있다.선덕(宣德) 元年 丙午(一四二六) 十月一日卒 壽八三歲 墓옥과(玉果) 서면(西面)에 있었다고 하나 전하지 않아서 一九六五(乙巳)에 군부인(郡夫人)의 묘소 위쪽에다가 단(壇)을 설치하여 비석을 세웠는데 비문은 20세손 평규(平奎)가 지었다.영조(英祖) 丙申(一七七六)에 익찬(翊贊) 황윤석(黃胤錫)이 지은 전(傳)과 『여말충의열전(麗末忠義列傳)』이 있다.配군부인(郡夫人) 延安金氏(연안김씨) 丁亥(一三四七)生 癸未卒 墓순창군 품곡면(品谷面) 등동(嶝洞) 유좌(酉坐) 비석이 있었는데 공의 단(壇)을 만들 때 고쳐 세웠다. 父대호군(大護軍) 김관의(金寬毅) 祖판서(判書) 김패(金稗) 曾祖판서(判書) 김경성(金景成)